잡동사니

통닭 그리고 걷기

구르는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2015. 6. 9. 17:01

몇 해전 인생의 최대 실수를 범했다.

집값이 고꾸라쳐박히는 시기에 아파트 한 채를 계약한 것이다.

이 아파트로 인해서 평탄한 내 인생에 폭풍우가 휘몰아 치게 되었다.

너무나 가격이 내려서 손해가 어마어마한데다가 아무리 가격을 싸게 내놓아도

사려는 사람이 없어서 월급의 대부분을 융자 갚느라 생활비가 모자라는 형국이었다.

 

나나 집사람이나 결혼할 당시 거의 무일푼에다가 양가에서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한 상태여서

짜장면 한그릇 제대로 사먹을 여유도 없었는데

그런 암담한 생활이 다시 반복이 되다니 속으로 열불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도 나 지만 집사람은 정말 빚지고는 못사는 성격이라 아주 작은 돈도 모아서 융자를 갚는데

혈안이 되어 있어 집에서 먹는 밥 이외에는 일체의 외식도 간단한 통닭 마져도 전혀 사먹지 않는

초긴축 예산 정책을 유지하였다.

 

이런 생활이 장기화 되자 집안 분위기는 더더욱 경직되어 지고 우리 부부간에도 냉전이 지속되는데.....

 

어느날 저녁 호수공원에서 마라톤 운동을 마치고 나서 전 가족을 통닭집으로 호출하였다.

 

어리둥절한 채로 모인 집사람과 딸내미 그리고 아들.........

 

내가 호기롭게 선언하였다.  "오늘 통닭은 내가 쏜다."  용돈이라고는 회사를 간신히 다녀올 수 있는 교통비와

아주 최소한의 점심비용밖에 받지 못하는 상태라는 걸 뻔히 아는 집사람이 약간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 본다.

 

아주 맛있게 먹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나 집사람은 먹는둥 마는둥 하고 아이들한데 다 양보하고

통닭집의 바깥에 있는 벤치로 나와 앉았다......

 

"생각해 봤는데 긴축도 좋고 융자 갚는 것도 좋은데 돈 모으는 것은 우리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이니

미래 보다는 현재에서 기쁨을 가끔 느껴 봅시다........"

 

집사람도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에서 느낀 것이 있는지 그러지 않아도 그런 생각을 가끔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냉전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앞으로 서로 노력을 하고 또한 취미를 공유하는 것이 좋다고 하면서

현실의 고통을 덜기 위해서는 힘든 운동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며  어디라도 정기적으로 걷자는 제안을 했다......

 

그 뒤로는 통닭을 자주 먹게 되었고 토요일마다 강화도로 북한산으로 또 파주 연천으로 하염없이 걷고 또 걷게 되었다.

 

아직도 하우스 푸어에서 해방되지 못해 엄청난 융자 상환에 시달리는 고달픈 인생이지만 "통닭과 걷기"가 있어

우리 부부 인생이 그리 불행하지만은 않다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오늘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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