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이야기

솜이불

구르는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2006. 2. 14. 10:34

 

 

아마도 갑자기 솜이불이 불현듯 머리속에 떠오른건 어느 카페에서 본 사진 때문일게다.

철쭉위에 쌓여 있는 눈이 꼭 목화가 만발한 것으로 착각하리만치 비슷하게 다가와 이 추운 날씨에

따뜻한 솜이불이 그리워 졌음인가?

어릴적 우리집은 (뭐 우리집 뿐만 아니라 우리 시골동네 집집마다......) 밭 한귀퉁이에 목화를 심었다.

여름내 자란 목화는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데 이 열매를 입에 넣고 씹으면 달콤한 액체가 흘러나와

할머니의 눈을 피해 많이도 따 먹었다.

이 열매가 가을이 되면 목화솜이 피는데 완전히 핀 목화를 일일이 손으로 따서 큰 자루에 넣어 방안

한 구석에 놓아두고 겨우내내 화롯가에서 목화의 씨를 빼는 작업을 했다.

집살림에 목화가 꼭 필요한 곳은 딸을 시집 보낼때 이불솜으로 쓰기 위해서이기 때문에 아주 많은 양을

재배할 필요는 없으나 적은 양이라도 목화씨를 다 빼내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낮에는 각자 할일을 하기도 하고 놀기도 했지만 해진 저녁부터는 식구들이 죽 둘러앉아 목화씨를

빼는 작업을 한다.

특별히 어려운 작업은 아니지만 목화씨에 솜이 남지 않도록 분리하는 것은 좀 지루한 작업이기 때문에

이럴때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도 듣기도 하고 엄마의 세상사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밤이 이슥해 지면

화롯불에 밥을 뎁혀 비벼먹기도 하고...........

어느날 아버지가 어디서 구하셨는지 "씨아"라고 목화 씨 빼는 아담한 기구를 가져 오셨는데

이 간단한 기구는 성능이 좋아서 처리속도가 그냥 손으로 할 때 보다 5배에서 10배정도나 되는

엄청난 기능을 가지고 있어 작업이 한결 수월했다.

다만 이 기구를 손으로 돌릴때 삑삑거리는 소리가 엄청 크고 또 어린 애들이 작업하기에는

매우 위험한 것이 흠이기는 했다.

장난삼아 씨아의 중간에 손가락을 넣어보면 뼈가 부수어 질 만큼 아팠는데 일부러가 아니면

손을 다칠 위험은 적지만 말이다.

이 후 부터는 목화손질이 훨씬 빨라지고 쉬워져서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를 들을 기회도 적어졌고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아예 목화를 재배하지 않게 되었다.

카시미론 솜이 혼수품으로 대체되기 시작했고 우리집에도 비록 여름용이기는 하지만 카시미론 이불이

장농속에 놓여졌다.

그러나 여전히 겨울에 덮는 두꺼운 이불은 목화솜 이불이었는데 아주 두껍고 무거웠지만

시골집의 숭숭뚫린 창호지 사이로 들어오는 칼바람에서 우리를 지켜주어 단잠을 자게 도와주는

일등공신이었다.

누나가 시집을 갈 때에도 엄마는 우겨서 목화솜으로 원앙금침을 만들어 혼수품으로 주었다.

겨울에는 목화솜이 최고라며.......

할머니와 엄마가 세상을 뜨시고 나도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울 집사람이 가져온 원앙이불은

목화솜이 아니라 카시미론솜이어서 아쉬웠는데 다행히도 결혼전에 덮던 목화솜이불이 나에게 한채

있어서 겨울에는 이 이불을 덮고 잠을 자곤 했다.

그러나 아파트로 이사오면서 너무 무겁고 두꺼운 이불보다는 얇고 가벼운 솜으로 만든 이불에 훨씬더

적응하게 되었고 엄마냄새가 나던 목화솜은 어느날인지 눈에 띄지 않게 되었다.

지금은 어느 시골에나 가 봐도 목화를 구경할 수 없어 아쉽고 엄마 냄새가 나던 이불이 없어져서

더욱 아쉽다.

가끔 엄마 생각이 나면 그 이불 꺼내어 덮고 자 보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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