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이야기

곤로의 추억

구르는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2009. 3. 26.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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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언제 부터 우리집에 석유곤로가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아마도 1970년대 중반정도 였을 것입니다.

 

엄마의 일 손을 많이 덜어준 고마운 조리기구였죠.

 

켜고 끌 때 석유냄새가 좀 나는 것을 제외하고는 엄청난 획기적 성능때문에 집집마다 곤로를 장만했었습니다.

 

밥도 하고 국도 끓이고 프라이팬에 볶음도 하고........

 

들판에서 농사일을 끝내고 집에 오셔서 재빨리 저녁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엄마는 곤로의 혜택을

 

가장 많이 입으신 분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제게 가장 기억에 남는 곤로의 추억은 바로 그므낭꼴과 함께 동거한 대학시절이었습니다.

 

제가 가난한 고학생으로 한두달 동안 지낼 방이 없어 그므낭꼴 자취방에서 함께 생활을 하였습니다.

 

저도 가난하고 그므낭꼴도 엄청 어려웠죠.    그러나 그므낭꼴은 직장이 있었기 때문에

 

월급날에는 저를 시장으로 데리고 가서 떡볶기도 사주고 순대에 튀김에 소주도 함께 마셨습니다.

 

한창 왕성하게 먹을 나이에 그므낭꼴이 없었다면 저는 아마도 지금 이런 몸매를 갖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월급날을 제외하고는 곤로에 밥을 해서 시골에서 가져온 김치와  날 김에 간장찍어서 밥싸먹는 게 거의

 

매일 계속되었습니다.   우리 둘다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건 아니기 때문에 그런건 문제가 없었습니다만

 

그므낭꼴이 사는 방에는 난방이 되질 않았습니다.

 

옷도 두껍게 입고 두꺼운 이불을 덮고 둘이 붙어서 함께 잠을 잤지만 너무나 추웠죠.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곤로였습니다.  곤로를 방에 들여놓고 잠자기 전에 켠다음 방이 훈훈해 지면

 

곤로를 끄고 창문을 재빨리 열어 석유냄새와 가스를 없앤다음 추워지기 전에 창문을 닫고

 

얼른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새벽이 되면 추운건 마찬가지 였지만 그래도 잠들기 전에 따뜻한 느낌으로 잠이 훨씬 더 편안하게

 

다가왔습니다.

 

지금은 월세자취방도 면하고 곤로도 없어지고 그 때보다는 몇 십배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만

 

행복을 느끼는 감도는 예전만 못한 것 같습니다.

 

지나간 것들은 모든것이 아름답기 때문일까요?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저는 그므낭꼴에게 의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기타도 노래도 물론이고 고민되는 일, 경제적 문제,  노후 준비...........

 

젊을 때 함께 살면서 언젠가는 그므낭꼴에게 제가 큰 힘이 되어 주겠노라고 다짐했건만

 

아직도 도움만 받는 처지네요.

 

곤로불에 의지하여 추운 겨울밤을 함께 버틴 젊은 날은 평생 우리 둘의 사이를 함께 묶어줄 든든한 끈일 것이라고

 

믿으며 오늘도 그므낭꼴에게 문자를 날려봅니다.

 

"술 조금만 마시고 몸 관리 잘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