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이야기

예전의 기억 하나

구르는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2006. 2. 11. 09:14

몇년전에 썼던 일기 비슷한 글입니다.

다시 마라톤을 시작할까 하는 고민과 함께 기억속에서 꺼내봅니다.

------------------------------------------------------------------

 

어젯밤  호수에서는  마라톤 동우회 수요 달리기 모임이 있었습니다.
몸이 별로 좋지 않았지만 머리속도 어지럽고 생각도 정리할 겸 참석을 하였습니다.
약간 속력을 내어 2바퀴 달리고 집에 와서 몸을 씻으니 기분도 상쾌하고 날아갈 것 같습니다.

다만, 요새 체중을 줄이기 위해
몇주일 동안 아침과 저녁을 날콩이나 생식으로 간단히 때웠더니 허기가 졌습니다.

저희 집사람은 밤에 무슨 음식이든 절대 먹지 않는 것이 철칙이었고,
감히 피자나 통닭등을 한밤중에 배달시켜 먹는 것은
우리집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꾀를 내어 딸과 아들을 꼬셔서 큰 소리로 물었습니다.
"너희들 통닭 먹고 싶으면 말해! 내가 사줄게."

그러자 아이들은 만세를 부르며 좋아했습니다.
나는 나의 주머니속 쌈짓돈을 만지작 거리며 집사람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집사람은 의외로 아무런 코멘트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방안에서 인터넷을 잠시 하는 동안 통닭이 배달되어 왔는데
놀랍게도 집사람이 아무말 없이 돈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여튼 뭐 10,000원이 굳었으니
전 행복한 마음으로 아이들과 또 집사람과 함께 통닭을 먹었습니다.
제가 제일 어른이니까 닭다리 한개는 물론 제 것이었죠.

통닭을 먹다말고 집사람이 묻더군요.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느냐고.....
생각을 해보았지만
글쎄... 내생일도 아니고 집사람생일은 낼모레고.....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자 집사람은 바로 저의 월급날이라고 하더군요.

남들은 월급날이면 외식이다 뭐다 해서 한상 잘차려 먹는데
그까짓 통닭 한달에 한번 못먹겠느냐고.....

요즘 저희집에 큰 고민 거리가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끙끙 앓고만 있었는데
집사람은 또 그것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더군요.

우리도 사는게 어렵지만 주위에는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도 많은데,
사실 우리집 고민이래야 돈 얼마(사실은 많이) 손해보면 그만인데
그걸로 인해서 몇날 몇일을 잠못자고 고민해서야 쓰겠냐고....

그동안 결혼해서 십수년을 월급장이 틀에 맞춰 사는게 너무 힘들었지만
이제 양보할 건 하자고 하더군요.(이거 써놓고 보니 무슨말인지 도통.....)

순간 저는 성숙한 아내에게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속좁고 답답한 월급장이하고 사는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연민이 들었습니다.

"그래! 여보 오늘 밤 부터는 정말 아무 걱정 없이 잠만 자는 거야!"

"엄마, 아부지 이거 우리 다 먹어도 돼요?"

"응! 다 먹어. 아부지는 더 안먹어도 배 부르다"

이렇게 우리의 통닭 파티는 끝이 났습니다.

------------ 2002년 겨울밤....